26일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이 2024년을 마무리하는 전시로 펼친 이세현 개인전 ‘빛나고, 흐르고, 영원한 것’은 ‘붉은 산수’를 창안한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전시다.
자연의 근원적 생명성과 우주의 영원성을 배경으로, 현실의 부정적 요소에 맞서 생명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변화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대표 연작 ‘붉은 산수’는 여전히 뜨겁다.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금기의 색이 되었던 붉은색의 도입과 동서양 미술의 결합을 통해 분단 현실과 이념 갈등, 정치, 사회적 이슈, 개인적인 서정과 경험을 한 화면에 조합하여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붉은 풍경 이면에 감춰진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와 비극적 서사를 드러내는 사건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를 통해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탐구한다.
작가의 유년 시절의 기억과 고향 상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이번 신작에서 자연풍경과 밤하늘의 별들로 승화된다. 작가의 세계관이 사회적 현실에서 자연과 우주로 확장되는 전환점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작가의 고향 거제도와 어머니의 고향 통영의 자연풍경은 유년기의 행복한 기억과 공동체적 온기가 깃든 원형적 장소로, 그의 내면에서 자아 정체성과 예술세계를 형성하는 뿌리로 작용한다.
┼
“내 기억 속 한국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는 7살 때까지 고향인 거제도에서 살았고, 이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로 이사를 갔지만 방학 때마다 거제도 큰 집에 가서 사촌 형들하고 함께 뛰어놀고 매일 바닷가에서 수영하며 즐겁게 놀았다. 바다와 산, 강, 눈 등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있는 고향은 내게는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도시화에 따른 신거제대교 개발로 인해 고향 마을이 사라지면서 고향은 회복이나 귀환이 불가능한 장소가 되었다.”(화가 이세현)
┼
작가의 내적 변화는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에서도 반영됐다. 이전 작품에 등장했던 군함, 포탄, 핵무기 실험, 비무장지대 DMZ 풍경, 휴전선 인근 임진강 풍경 등 사건 중심의 사회적 사건이나 이념 양극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던 강렬한 상징성을 지닌 서사가 화면에서 거의 사라졌다. 대신 별, 구름, 은하수와 같은 자연 현상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울림과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미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작가는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의 시 세계에 담긴 절대적인 의지와 순수한 정신, 삶에 대한 성찰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시에 등장하는 ‘별’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4층 전시장에는 ‘붉은 산수’ 연작의 기초가 되는 30점의 연필 드로잉도 공개한다. ‘붉은 산수’ 연작의 시작점으로서 화면 구성과 자연의 정수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로잉은 현대 문명에서 상실된 생명성과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다.
전시 기간인 오는 12월6일 오후 3시부터 이세현 작가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전시는 2025년1월18일까지.
◆이세현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 첼시예술대학교 대학원을 마쳤다. 2024년 독일 쾰른의 미하엘 호어바흐재단, 2023년 독일 베를린의 Bermel von Luxburg Gallery, 2020년 싱가폴과 서울의 더 컬럼스 갤러리, 2019년 노르웨이 베르겐의 쿤스트 홀314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미국 뱅크 오브 아메리카 본사, 스위스의 버거 컬렉션, 율리시그 컬렉션, 영국의 올 비주얼 아트, 카랄리에트로이 컬렉션,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아트 컬렉션, 로레인배릭 컬렉션,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등 전 세계 여러 유명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14년 제 11회 하종현미술상을 수상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독일판 표지로 채택되어 화제가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